알고 계셨나요?
광장을 사이에 두고 50년간 38분 어긋나 있던 봄베이의 두 시계
1955년까지 봄베이는 자기만의 시간을 썼습니다. 봄베이 시간은 인도 표준시보다 38분 50초 늦었고, 어느 시계를 따르느냐가 곧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싸움은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도시에 단일 시간을 강제하려던 첫 시도는 1870년에 실패했습니다. 1881년 봄베이 총독 제임스 퍼거슨 경은 모든 관공서에 철도 시간을 쓰도록 명령하고 시민들에게도 따르라고 권했습니다. 도시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총독이 갑자기 표준화에 열을 올리는 것은 기차를 두 번이나 놓친 일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정부는 1883년에 현지 시간을 되돌려야 했습니다.
같은 해 봄베이 대학 평의회는 대학에 새로 세운 280피트 높이의 시계탑이 어느 시간을 따라야 하는지를 두고 회의 내내 논쟁을 벌였습니다. 한 위원의 주장은 간단했습니다. 시계와 탑이 봄베이의 것이니 봄베이 시간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1905~1906년, 인도 총독 커즌 경이 인도 표준시를 전국에 강제했습니다. 그는 막 벵골을 분할한 바로 그 커즌이었고, 봄베이에서는 그의 시계를 거부하는 것이 곧 그를 거부하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공공 시계탑에 돌이 날아들었습니다. 사무원과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습니다. IST가 현대 과학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내건 반대 청원에 서명이 모였습니다.
제이콥 사순 공장에서는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모여 시간 기록원 사무실을 부쉈습니다. 새 시간을 따르면 동이 트기 전에 일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공장은 한발 물러서 봄베이 시간 오전 6시, 곧 표준시 오전 6시 39분에 일을 시작하게 해 주었습니다. 다시 말해 해 뜰 무렵입니다.
시계: 그리고 도시는 그 뒤 50년 동안 두 시간을 그냥 함께 썼습니다.
신문은 그날의 행사 일정을 실으면서 항목마다 "BT" 또는 "ST"를 붙였기 때문에, 그 행사가 어느 시간을, 그리고 어느 정치를 따르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빅토리아 터미너스 꼭대기의 시계는 표준시를 가리켰습니다. 광장 바로 건너편 시청의 시계는 봄베이 시간을 가리켰습니다. 두 시계는 38분 차이를 둔 채 반세기 동안 서로 마주 보았습니다.
마드라스 시간은 단계적으로 사라졌습니다. 캘커타 시간은 1948년까지 이어졌습니다. 봄베이는 1955년까지 버텼고, 그 뒤에도 파르시 배화 사원은 의식에 이 시간을 계속 썼으며, 뭄바이 사람들은 늦게 나타나면 "봄베이 시간대로 움직이는 중"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출처 및 참고자료
- Bombaywiki(CAMP), *봄베이 시간*(정확히 38분 50초, 서로 마주 본 빅토리아 터미너스와 시청의 시계)
- Atlas Obscura, *'봄베이 시간'의 오랜 역사와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1870년과 1881년의 시도, 라자바이 탑 논쟁, 제이콥 사순 공장의 노동자 2,000여 명)
- Shekhar Krishnan, *봄베이 시간: 식민지 도시의 시계 작동, 1870~1955*
- Live History India, *시계 맞추기가 아대륙을 갈라놓았을 때*(신문의 BT/ST 표시, 짐 마셀로스 인용, 캘커타 1948년, 봄베이 1955년)
- Oxford ORA, *The Politics of Time in Colonial Bombay*(기차를 놓쳤다는 퍼거슨에 관한 소문, 1883년의 철회)